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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가족부]'발달 장애' 관악단에게 받은 '따뜻한 위로'
첨부파일 : 등록일 : 2008-12-08 00:00:00 조회수 : 10726

'발달 장애' 관현악단에게 받은 '따뜻한 위로'
 



2008년 11월 27일. 아침부터 내린 가랑비가 서서히 개일 즈음, 나는 긴 코트를 걸치고 mp3에서 흘러나오는 'Lisa Ono'의 재즈를 들으며 길을 나섰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톡톡'소리도 내 구두 굽 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조용한 하모니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하모니가 어우러져 공존하고 있다.

그것이 mp3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든, 빗물이 우산 위로 떨어지며 내는 소리이든, 뾰족한 구두 굽이 바닥과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소리이든 상관없다. 단지 그런 다양한 소리들이 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고, 그로 인해 우리의 마음은 조금 더 풍요로울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아무런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특히 '음악'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그 무엇으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수행해준다. 그렇기에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를 만나러 가는 내 발걸음은 두근두근 설렐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냥 음악이 아닌, '특별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발달 장애'청소년 관현악단 알고있니?
며칠전, 한 친구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대학교에 들어와 가끔 마주치면 인사 정도를 주고받는 사이의 친구였다.
"은아야, 너 요즘 보건복지가족부에서 기자활동 한다며? 혹시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라고 아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뜬금없는 말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아니, 잘 몰라. 왜?"라고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는 "작년에 그 오케스트라 공연을 본 적이 있어. 네가 보건복지가족부에서 활동한다면 이번 공연에 너도 한번 가봤음 좋겠다 싶어서"
라고 말하며 환희 웃어 보였다. "발달 장애인들로 이루어진 관현악단인데 말로는 설명 못해. 가서 직접 그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아마 너도
많은 걸 느낄 수 있을 거야. 나도 그랬거든" 친구의 강력 추천에 어떤 공연이길래 이토록 추천을 할까란 호기심과 기대로 취재 결심을 했다.

■ 영혼이 만들어 내는 환상의 하모니 팬이 되어...
압구정역에 내려서 밖으로 나왔을 때는 비가 완전히 그친 뒤였다. 미리 적어온 약도대로 길을 따라 가니 곧 내 눈 앞에는 그들의 특별한 음악회가
열릴 '장천아트홀'이 나타났다. 앞에 주차되어 있는 노란 버스는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프린팅되어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사전 취재 요청을 드렸던 선희정씨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그리고는 곧장 리허설이 한창인 무대로 나를 안내해 주셨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3층에 내려서는 순간, 내 귓가로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 소리가 스며들었다. 공연장의 육중한 문을 밀어냄과 동시에
그들의 연주는 더욱 또렷하고 오롯이 내게 전해졌다. 그곳은 트럼펫의 협연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나는 순간 강한 충격을 받았다.

'대체 누가 발달 장애인이란 말인가?' 무대 위에서 각자의 악기렬 연주하고 있는 모습은 일반 오케스트라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악보를 바라보고, 지휘자 손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열심히 악기를 연주하는 그들의 모습은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미소짓게 하고,
우러나오는 박수를 치도록 하는 최고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일 뿐이었다.

그렇게 넋을 놓고 무대 위에 바라보는 나를 향해 한 단원이 찡긋 웃어보였다. 검은 양복에 나비네[ㄱ타이를 맨 그는 플롯을 불고 있었다.
한없이 맑은 그의 미소에 나도 따라 웃었다. 서로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가슴 깊숙이까지 따뜻하게 비춰주는 그 미소가 벌써 그립다.
나는 그렇게 '영수'의 팬이 되었다.

■ 그들의 노력과 어머니의 사랑이 더해진 '환상의 하모니'
무대 위에서는 여전히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나는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조금이라도 그들의 살아있는 연주를 담아내고 싶었다.
동영상도 열심히 찍었다. 하지만 역시 사진이나 동영상은 순간의 부분적인 기억만이 새겨질 뿐이다. 그림이 실제 작품을 전시회장에서보는 것과 책 속 삽화로 접하는 것이 어마어마한 차이를 갖듯이, 음악 또는 실제 공연장에 가서 공기의 울림을 타고 전파되는 소리를 듣는 것과 연주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전자기기를 거쳐 듣는 것과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갖는다.

나는 동영상 찍기를 포기하고 그냥 내 두 귀로 감상하기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나는 내 옆에 앉아 계신 한 어머니의 기도 소리를 들었다.
오케스트라 단원인 이택승(21, 백성문화대학 일본어과)군의 어머니셨다. 낮게 읊조리시는 기도 소리에는 아들에 대한 사랑과 축복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기도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살며시 말을 건네 보았다.

내 아들은 이 오케스트라가 생기고 얼마 안돼서 오디션을 봤고, 합격해서 지금은 플롯을 불고 있어요. 그 전엔 그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단원으로서의 소속감으로 떳떳하고 마음의 안정감도 얻었어요. 우리 아들이 악기를 연주할 때 얼마나 기뻐하는지 몰라요.
얼마전엔 시카고로 해외 공연도 다녀왔어요. 병원에도 여러번 공연을 가서 많은 분들에게 힘이 되어 드리는 음악을 연주하고 왔어요."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훈훈해졌다.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즐거운 저녁식사를 하다
리허설이 끝나고 모두 식당으로 갔다. 공연을 하기 전 든든하게 식사를 해 두기 위해서였다. 나도 그분들과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얼큰한 '육개장'과 김치가 맛깔나게 차려져 있었다. 나는 단원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곳으로 가서 "같이 앉아도 될까요?"를 외친 뒤 빈자리를 찾아갔다.

그저 함께하고 싶었다. 대화를 할 수 없어도 그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음악을 들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것이 바로
'음악'의 힘인 것이다. 내 옆에 앉아 있던 한 단원은 너무나 깔끔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클라리넷 협연을 하던 바로 그 단원이었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절대 식탁 위에 올려 놓지 않고 밥도 국에 절대 말지 않고 따로 먹었다. 예전에 공동 식기에는 식사를 하지 않겠다고 한적도 있었단다.

흘리거나 튀기는 경우도 없었다. 반찬 투정하는 법도 없었다. 너무나 어른스러버게 식사를 하는 그 모습에 나 역시 흘리지는 않을까 조심해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 앞에는 연신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있는 또 다른 단원이 있었다. 본인은 이미 식사를 끝마쳤는지 옆에 계신 어머니의 식사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넌지시 어머니께 말을 걸어 보았다.

"우리 종현이(정종현, 22,취업 2년차)는 꼼꼼하고 차분해요. 학교에 다닐 때부터 선생님들이 음악을 시켜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셨어요.
한번 들은 노래는 바로 따라 부를 정보로 음감과 음악성이 뛰어나거든요. 그렇게 클라리넷을 배우던 중에 '하트-하트윈드오케스트라'를 창단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디션을 봤답니다. 낮 시간에는 하루 4시간씩 베니건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 또 수영도 배우고, 농구도 해요. 그리고 오후 시간에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러 와요.
지금은 오케스트라 활동이 취미를 넘어 직업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죠.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었죠. 하는 일들이 많아 조금 벅차기도 했던가봐요. 그리고 그 동안은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만 연주하다가, 합주를 하려니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던거 같아요. 하지만 2~3개월 지나가니까 서서히 좋아지더라고요.
그리고 지금은 너무나 즐겁게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답니다."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머릿속에서는 그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분명 그만큼 아들과 함께 고생하셨을 어머니의 주름살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의 오케스트라가 있기까지 부모님들의 사랑과 희생이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불가능했을 것임을 느낄수 있었다.

■ 눈빛만 봐도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어요
식사를 마치고 다시 무대로 돌아온 단원들은 대부분 각자 대기실에서 악기를 불거나,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공연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대 무대 위에서는 한 단원의 피아노 연주 연습이 한창이었다. 그리고 무대 앞쪽에는 또 다른 단원이 피아노 반주에 맞춘 클라리넷협연을 연습 중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또 다른 한 사람, 단원들의 연주를 조율해 주고 계신 '고대인 클라리넷 선생님'이 계셨다. 인사를 건네고 잠시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저는 학교 선배의 부탁으로 이곳에서 클라리넷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우리 학생들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정말 고생 많이 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함께한 추억이 늘어날수록 서로의 눈빛만 봐도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이가 되어갔어요. 우리 학생들은 일반인들보다 훨씬 인간적이에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쬬."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표정에 학생들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묻어나왔다.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냐는 질문에 그는 "미국으로 연주회를 갔을 때 아무래도 그 곳 환경이 모두 새로우니까 우리 단원들이 돌발행동을 많이 일으켜서 힘들었다"면서 "하지만 공연 후 현지 분들의 뜨거운
성원에 너무나 뿌듯했고 기뻤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처음 악기를 가르칠 때와 지금 학생들의 어떤 점이 달라졌냐는 질문에 그는 "악기를 배우면서 우리 학생들이 많이 차분해지고 행동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모여 연습을 하는데 학생들이
함께 합주를 하다 보면 참을성과 인내를 배우게 되죠. 물론 지금도 오랜 시간 집중하는 건 그들에게 쉽지 않지만요"라고 밝게 웃으신다.

짧은 대화를 뒤로 하고 다시 공연 준비를 하러 가시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악기 하나 제대로 배웠더라면 저분처럼 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데'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 그들의 음악으로부터 얻은 '따뜻한 위로'
하트-하트 재단의 홍보대사인 '취수종, 하희라'씨의 무대 인사가 끝나고, G.J.Elvey의 '면류관 가지고'라는 곡으로 공연은 시작됐다.
객석은 빈자리 하나 없이 가득 매워졌고, 한 곡이 끝날 떄마다 우렁찬 박수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나도 그들의 멋진 하모니에 내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나는 플롯 협연을 멋지게 해낸 영수를 보며 감탄을 금하지 못했고, 색소폰으로 아름다운 선율을 선물해 준 범선군의 연주에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의 의미는 '위로'였다. 그들의 연주가 내게 준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노력하는 사람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따뜻한 위로였고 사랑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음악'이라는 포근하고 넓은 가슴으로 관객들을 안아주고 있었다. 나는 그 아늑한 품속에서 삶의 긴장을 풀었고, 평화로운 눈물을 흘렸다.
이제 나는 친구가 했던 '직접 듣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어'라는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의 연주는 오래도록 내 가슴속에 오르골로 새겨져 태엽을 감을 때마다 위로의 하모니를 들려줄 것이다.

보건복지가족부 대학생기자 강은아
 foryoukang@hanmail.net

미소가 아름다운 최수종·하희라 홍보대사, 장애 청소년들에게 힘이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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