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웃을 때 양 볼의 보조개가 쏙 들어가는 김민정 씨 옆에 어머니 신영미와 아버지 김용석 씨가 나란히 앉아 있다. 다운증후군 중증 장애. 솔직히 기자는 조심스러웠다. 혹 생각이 짧은 내가 상처 될 말을 하지는 않을지, 언어 표현이 쉽지 않은 그와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 앞섰다. 인터뷰는 말과 말이 섞여 마음을 나누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그런 기자의 태도가 기우였을 만큼, 민정 씨는 느리지만 자기 생각을 정직하고 깨끗하게 표현할 줄 알았다. 또 부정확한 발음을 통역해 주는 부모님이 계셔서 김민정 씨 가족과의 대화는 즐거웠다. 어려운 시절을 말하는 대목에선 담담하다가도 서로를 이해하고 놀리기도 하는 반전 속에서 인터뷰는 유쾌하게 진행되었다. 사람 공부, 인생 공부를 하며 기자는 딸과 부모님, 3인방의 매력에 동화되었다.
가장 궁금한 것부터 질문할게요. 민정 씨에게 ‘올탱이’라는 필명이 있더라고요. 직접 펴낸 그림책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하고요. 어떤 뜻인가요?
민정: 귀여운 아이요.
엄마: 어떤 선생님이 민정이한테 붙여준 이름인데, 귀엽고 작은 존재라는 지역 방언이라고 하더라고요. 민정이만의 고유 캐릭터로 사용하고 있어요. 가끔 고집부려서 그렇지 귀엽긴 귀여운 아이예요.(웃음)
민정 씨 보조개를 보고 직감하긴 했어요. ‘귀여운 아이’는 그림책을 내는 작가로 활동 중인데요. 글과 그림을 어떻게 발상하고 표현하는지 그 과정이 궁금해요.
엄마: 민정이가 툭툭 던지는 말들이 놀라웠어요. “비가 오면 구름이 까매져”, “꽃이 피면 예쁜 계절이 돼”, “저 꽃은 나비 같아” 세상을 투명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의 말이 시처럼 느껴졌어요.(시인인 어머니의 감수성을 그대로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민정이는 20대 초반부터 복지관에서 미술을 배웠어요. 말보다는 좀 더 자유롭게 자기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을 좋아했어요. 고래와 새를 특히 좋아해서 이들을 상징처럼 활용해 가족의 이야기를 그려가더라고요. 그 과정이 행복해서인지, 많은 분이 민정이 그림이 밝고 따뜻하다고 말씀해 주세요. 저와 같이 그림책 작업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발달장애인의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하트-하트재단에서 연락이 왔어요. 지난해부터 민정이가 하트-하트재단 소속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며 월급도 받고 있습니다. 도움 주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같이하고 있는데 정말 감사해요.
월급을 받는 전속 작가가 된 거네요.
네, 매주 월요일에 재단에 출근합니다. 평일에는 스케줄을 정해 바쁘게 지내고요. 평생교육센터에 가서 드럼도 치고 댄스도 하고 공예도 배우고 사회생활도 해요.(이때 민정 씨가 옆에서 “생일파티도 해요.”라고 말한다.) 맞아요, 생일파티도요.(웃음) 토요일에는 집에서 유튜브를 보며 플루트나 우쿨렐레 같은 악기를 배우고 일요일에는 온 가족이 함께 교회에 갑니다. 정말 제가 봐도 대견해요.
배우는 것을 무척 좋아하나 봐요. 할 줄 아는 것도 많고요.
아빠: 우리 교회 목사님께 안수 기도를 받은 적이 있는데요. 그때 목사님이 민정이 손을 가만히 잡고 살펴보시더니,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손이네요.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이 큰 힘이 됐는지 (아빠도 민정 씨 손을 잡아 본다.) 뭐든 진지하게 임해요. 얼마 전에는 엄마와 같이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땄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 필기시험 공부를 하더니 결국 해내더라고요. 본인 마음에서 하려는 의지와 열정이 대단해요. 오히려 저희가 민정이한테 배웁니다.
이번에 그 결실로 그림책 《올탱이와 친구들》이 세상에 나왔어요.
아빠: 먼저 민정이가 그리고 싶은 대상을 그려 놓고 엄마와 대화를 나누면서 스토리를 잡아갔어요. 책은 올탱이가 집을 나간 강아지를 찾아 떠나는 내용이에요. 길 위에서 친구를 하나씩 하나씩 만나는데 결국 다 같이 강아지를 찾으러 나서죠. 서로 도우면서 두려움을 극복해요. 혼자가 아닌 함께라서 해낼 수 있지요. 민정이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올탱이 민정 씨와 함께해 준 ‘친구들’은 누구죠?
민정: 우리 가족.(그의 답변은 짧지만 흔들림이 없었다.)
민정 씨에게 가족 한 명 한 명은 구체적으로 어떤 그림일지 궁금해요.
엄마: 민정아, 색으로 표현해 볼래?
민정: 엄마는 주황색. 예쁘니까. 아빠는 보라색. 멋있어요. 민아는 노란색. 밝아.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태호는 빨간색. 해병대를 나왔으니까. 학준이는 노란색. 장난기가 많아요.
평소 좋아하고 그림에 자주 사용하는 색으로 가족을 표현했다. 그의 눈에 엄마는 예쁜 존재이며 사남매의 맏이인 민정 씨 밑으로 민아, 태호, 학준이 있는데 민아를 가장 아낀다고 한다. 집안의 세 남자들이 모두 해병대 출신이지만 아빠는 멋짐이 섞여 보라색으로, 막내 학준이는 장난기가 섞여 노란색이 되었다고. 가족을 색깔로 묻고 답하다니, 그 자체로 한 편의 시 같다.
이번에 민정 씨가 개인전을 연다고 했을 때 다른 자녀들 반응이 어땠나요?
엄마: 난리가 났어요. 저는 지인 몇 분 초대해서 소박하게 전시를 열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아이들이 현수막에 와이 배너, 안내장 그리고 포토월도 만든다며 발 벗고 나서는 거예요. 간식과 오프닝 행사 준비도 알아서 챙기더라고요. 너무 놀랐어요. ‘아, 이게 가족이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끈끈한 사이가 보기 좋습니다.
엄마: 평소에는 각자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요. 어떤 기준이나 틀에 갇히는 것을 싫어해서 제가 잔소리를 하면 “엄마가 내 인생 대신 살아 줄 거야?” 하고 되묻기도 하지요.(웃음) 아이들은 저희 부부에게 민정이를 너무 도와주지 말라며, 스스로 할 수 있게 하라고 말해요. 장애를 가지고 있으니까 무조건 누군가가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민정이 발음 연습을 하게 하려고 일부러 약을 올릴 때도 많죠. 민정이가 화가 나면 목소리가 커지는데 그때는 발음이 또렷해지거든요.(웃음) 자기들끼리 틱틱거리다가도 정말 중요한 순간이 오면 딱 뭉쳐서 하는 게 있어요. 이번처럼요.
아빠: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나 형제들이 가장 크게 가지는 감정은 ‘부담감’일 거예요. 그래서 비장애 형제들이 장애를 가진 아이를 그림자처럼 외면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어요. 그런데 저희 집은 달라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나요?
엄마: 민아가 여섯 살 때 하루는 저에게 묻더라고요. “엄마, 친구들이 언니를 바보라고 놀리는데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 내가 언니한테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 제가 이야기를 하니까 “알았어.” 하더라고요. 민아는 언니 손을 꼭 쥐고 초등학교를 다녔어요.
우리 아이들은 오남매였어요. 민정이 바로 아래 남동생 태준이가 돌 무렵 급성 뇌수막염에 걸려 투병하다가 9살 때 하늘나라로 떠났어요. 태준이가 살아 있을 때였는데 어느 날 민아가 집에 친구들을 데려와서 “엄마, 언니랑 오빠가 왜 이런지 내가 설명을 못해 주겠어. 엄마가 대신 말해줘.”라고 부탁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민아 친구들에게 장애가 무엇인지, 사람은 왜 서로 다른지 설명해 준 적이 있어요. 철이 일찍 든 아이를 보는 마음이 뭉클하기도 아프기도 했습니다.
아빠: 아이들이 생각이나 행동이 깊었어요. 우리 아이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동생이 같은 학교에 입학하면 꼭 동생의 담임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잘 봐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요.(웃음) 태호는 학준이가 신입생으로 들어왔다고 일부러 선도부를 했다더라고요. 혹시 누가 동생한테 함부로 대할까 봐서요. 제가 아빠지만 저한테 배울 게 없어요. 아이들이 훨씬 나아요.
사실 자녀들 성장에 중요한 시기에 제가 4년 정도 집에 없었어요. 민정이가 어릴 적 심장, 척추에도 문제가 있어 큰 수술만 대여섯 번을 받아야 했고 둘째도 많이 아파서 병원비가 상당했습니다. 가장으로서 더 열심히 일해야 병원비를 감당하고 가족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 미안하지만 육아는 아내 몫이었죠. 그런 과정에서 아내와 마음이 멀어져 4년을 별거하며 돈만 벌었어요.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걱정이 앞섰는데 사남매가 똘똘 뭉쳐 너무 잘 지내고 있더라고요.
냉전 시기인 2004년, 뇌수막염을 앓던 태준이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장례식장에서 부부는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어려움이 다 자기 때문인 것 같고 최선을 다하면 조금이나마 나아질까 싶어 힘들다는 말조차 남편에게 하지 못했던 아내. 그는 비로소 자기 연약함과 미안함, 하지 못한 말을 꺼내놓았고 부부는 서로의 아픔을 진심으로 위로했다.
이후 별거를 종식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의 눈에 훌쩍 자란 아이들이 보였다. 장애 아이를 챙기고 보살피는 것, 형제간의 우애는 당부는 할 수 있어도 강요는 할 수 없다. 그런데 단단해진 사남매가 알아서 서로를 챙기고 헷갈리면 부모에게 물었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이미 사람 하나를 품는 법’을 배워갔다고.
지나온 굴곡은 어머니 신영미의 마음에 시로 태어났고 딸 김민정의 그림 속에서 따뜻한 색으로 피어올랐다. 전시회장에 걸린 ‘너의 가슴에 깊고 넓은 방을 만든다’, ‘무너지지 않는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겹겹이 흐른 시간의 깊이’, ‘반듯하지 않아도 그 안에는 누군가를 향해 따뜻하게 열려 있는 사랑이 있다’라는 어머니의 시구가 말해주는 듯했다.
아이를 많이 낳은 것을 후회하시나요, 아니면 그 반대인가요?
엄마: 장애가 있는 아이 둘을 키우는 상황에서 셋째를 임신했을 때, 주변에서 다들 미쳤다며 아이를 떼라고 했어요. 하지만 기댈 수 있는 가족을 더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저는 막내 학준이까지 낳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하늘이 선물처럼 보내 준 아이들이 있어 늘 집이 복닥복닥합니다. 이제 다들 성인이 되었으니 독립하라 해도 이놈들이 집에서 안 나가려고 해요.(웃음) 낮에는 각자의 일로 바쁘다가 저녁이 되면 거실로 모여들어 이야기를 나눠요. 살아가는 이야기, 축구 이야기, 꿈 이야기,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제가 중간에 끊고 이제 그만 자라며 잔소리할 정도죠. 그렇게 서로에게 힘이 되고 친구가 되어 줍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더욱 좋은 것 같아요.
동생들을 아껴요. 맛있는 게 생기면 “민아 거”, “학준이 거”, “태호 거” 하며 챙겨 두고, 용돈도 모아뒀다가 동생들 나눠주며 누나 노릇을 하려고 해요. 센터에 가면 선생님들께 동생 자랑을 하는 팔불출 누나가 됐고요.
민정 씨, 언제 행복을 느껴요?
민정: 카페에서 커피 마실 때. 커피 만들 때. 그림 그릴 때. 하트하트 갈 때. 라포엠 공연 갔을 때. 영탁 콘서트 갔을 때.
가수 영탁 씨 팬인가 봐요.
엄마: 무척 좋아해요. 얼마 전에는 민아가 콘서트에 데려가 줬어요. 정작 민아는 트로트를 좋아하지 않아서 영탁 좋아하는 자기 친구랑 민정이 둘만 공연장에 들여보내고 밖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요.(웃음)
덕후 활동도 하는 바쁜 민정 씨네요. 민정 씨한테 가족이란 뭘까요?
민정: (말 대신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린다.)
인생의 자존가들을 만나면 덩달아 충만해진다. 이번에 만난 올탱이네 가족이 그랬다. 이들은 무엇보다 자기 일을 사랑한다. 어머니는 시인, 아버지는 행정가로, 자녀들은 그림책 작가, 회사원, 통역가, 해병대 장교로 각자의 삶을 멋지게 살아낸다. 필요할 땐 똘똘 뭉친다. 사남매의 수장인 첫째의 개인전에 형제들의 도움 융단폭격(?)이 그 증거다. 장애라는 구체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고립으로 숨지 않고 동행하는 법을 배워 농담도 건넬 줄 안다. 분명 아픈 시간이 있었는데 누구도 아픔에 머물러 있지 않다.
자존감 높은 가족의 ‘따뜻하게 열려 있는 사랑’이야말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민정 씨 손의 원동력이지 않을까. 그 손으로 오늘도 그림을 그리고 배움을 잇는다. 어머니는 이것을 ‘우주를 품은 손’이라고 말한다. 민정 씨도, 가족들도 우주 하나를 품었다.